<박항섭 화백의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평양 피난민’>
신군부 세력이 1979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던 소위 ‘12·12 사태’가 31년만에 다시 돌아왔다.
일전에 국방부 신청사 현관 정면에 걸려 있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적영’이란 그림이 운보가 일제시대 일본군을 미화한 ‘적진육박’과 너무도 유사한 탓에 광복군의 맥을 잇고 있는 한국군의 정통성을 훼손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이 그림이 12·12 사태 당시 국방부를 습격한 쿠데타 세력이 쏜 총알에 맞아 복원작업을 거쳤다고 글을 쓴 바 있다.
이후 국방부 역사에 밝은 분이 흥미로운 얘기를 전해왔다. 운보 그림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림도 당시 총탄을 맞았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운보 그림은 1발 밖에 맞지 않았지만 이 그림은 상당히 많은 총알 세례를 받았고, 마찬가지로 복원 작업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 그림은 바로 박항섭 화백의 작품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평양 피난민’이다.
12·12 당시 국방부에서 벌어진 총격전은 청사(지금은 구관)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가장 치열했는데 이 작품이 바로 그곳에 걸려 있던 탓에 총알을 많이 맞았다는 것이다.
박 화백이 1967년 6월에 그렸다는 이 작품은 1·4후퇴 당시 가족을 북에 둔 채 본인만 남하한 데 대한 죄책감을 표출한 그림이라고 한다. 그림 옆에 붙어 있는 작품 설명에도 작가의 그리움과 속죄의 눈빛이 담겨 있다고 적혀 있다.
복도 막다른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의 크기도 대작이다. 관제엽서 한장이 1호라는 것을 감안하면, 가로 길이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이 작품의 세로 길이가 성인 남자의 키보다 긴 것으로 미뤄 족히 200호는 넘지 않나 싶다.(비전문가가 본 것이어서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의 보관 상태는 썩 좋지 않다. 신청사에 있는 운보 그림이 유리로 보호되고 있는 반면 구관에 걸려 있는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평양 피난민들"은 작품의 표면이 그대로 외부에 노출돼 일부는 색깔이 변색하고 일부는 물감이 벗겨지고 있는 상태다.
미술계에서 보면 통탄할 일이 아닌가 싶다.
화가 박항섭(1923~1979)은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한국 근현대 서양화 1세대 작가이다. 동경 가와바타화학교를 1943년 졸업했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중앙미술대전 운영위원 지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읽어내는 깊이 등이 돋보이는 추상화로 한국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작가라고 한다. 또 그에게는 고향이란 늘 그리운 곳이요. 예술적 모티브였다는 게 미술계의 평가다.(그의 작품 역시 경매에서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주인을 찾아간다고 한다)
국방부에는 천경자 화백의 1972년도 작품인 '꽃과 병사와 포성'도 있다. 이 외에도 유명 화가의 작품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유명 화가들이 군을 묘사한 작품을 국무위원들 차원에서 구입해 전달했거나, 유력 인사들이 소장하고 있던 이들의 작품을 기증한 것들이다.
그러나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보관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지난해 공군이 대책을 마련한 것이 다행이다. 공군은 지난해부터 소장하고 있는 미술작품 880여점을 체계적으로 전산관리하는 한편 작품 하나하나를 인트라넷에 올려 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베트남전에서 F-4 팬텀기 편대가 공대지 작전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운보의 1972년 작품 ‘초연’이다. 이 그림은 김종필 전 총리가 1972년 공군 11전투비행단에 기증한 작품으로 추정 가격이 4~5억원 정도라고 한다.
공군은 상당한 세월을 거치면서 상태가 나빠진 이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에 의뢰해 6개월간의 복원 작업을 거쳤고 지금은 공군사관학교 본관에 전시하고 있다.
공군은 작품의 분실 및 훼손, 도난 등을 우려해 본부 물자과에서 미술품 전산관리체계를 개발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육군과 해군은 물론 국방부조차 공군과 같은 노력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12·12를 맞이해 하루빨리 전문기관에 군이 소장한 모든 작품의 감정을 의뢰한 후 훼손 작품은 복원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에 들어갈 것을 군에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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