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게 총기사고?
잊어버릴만 하면 다시 등장하는 병영 악·폐습 때문에 발생하는 총기사고. 아무리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지만 군내 총기사고가 ‘돌고 도는 것’은 곤란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네요. 군내 총기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보고 있으려면, 마치 ‘작년에 왔던 각설이, 잊지도 않게 또 왔네’ 하는 각설이 타령이 연상이 될 정도입니다. 게다가 총기사고 때마다 군 당국이 내놓는 병영 내 악·폐습 타파를 위한 재탕 대책도 총기사고와 함께 ‘세트 메뉴’로 등장합니다.
군의 단골 '대책 메뉴판'
군의 대책은 뻔합니다. 한마디로 ‘단골 메뉴’입니다. 부대 진단, 병영 대토론회, 제대별 정신교육, 국방부와 합참의 합동 실태점검, 병역심사관리대 설치를 통한 인성 결함자 입영 차단 등 등.
심지어 김관진 국방장관님께서는 육군이 이미 8년 전부터 육군일반명령 제03-21호로 제정해 운영하고 있는 ‘병영생활 행동강령’과 똑같은 내용을 ‘국방장관 지시사항’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새로운 대책인양 포장해서 전군에 하달하기까지 했습니다.(행동강령의 저작권이 궁금했습니다)
국방부를 10여년 넘게 출입하다 보니 이제는 총기사고가 나면 군의 발표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군이 내놓을 대책에 관한 기사 며칠치를 눈감고도 미리 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전역병과 함께 분대원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이재형 소위(앞줄 왼쪽).>
설마 했던 위장체험
며칠 전 후배 기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선배, 이제 대책 나올만큼 다 나온거죠”라고. 저는 “그래, 더 이상 나올 것도 없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로는 ‘설마 위장체험이나 세족식(소대장이나 선임병이 새로 전입온 이등병의 발을 닦아주는 행사)까지 또 한다고 그러지는 않겠지’라고 혼자 반문했습니다.
아뿔싸. 그런데 ‘설마’ 했던 추정이 현실화됐습니다. 장교들의 ‘이등병 비밀 체험’ 얘기입니다. 이 역시 연천 GP 총기난사 사건 이후 6년만에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싫고 해서 6년전 기사와 7월 22일자 기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가름하겠습니다.
그럼 6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2005년 8월 4일자 ‘국정 브리핑’
(당시 워낙 많은 언론 매체에서 보도했고, 청와대까지 이를 국정 브리핑으로 내보냈습니다)
“신임 소대장 45명 이등병 되다”
“신분을 노출시키지 마라.”
육군20사단 신병교육대 중대장의 신병교육 훈련 체험이 화제가 된 가운데 이번에는 육군31사단 예하 각 부대 신임 소대장 45명이 전입 신병 체험을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3사와 학군 장교 출신인 이들에게 지난달 19일 부여된 임무는 ‘이등병 비밀 병영 체험’. 임무를 받은 신임 소위 45명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 모든 보급품을 철저히 이등병 보급품으로 지급받고 최대한 이등병처럼 보일 수 있도록 연습했다.
그리고 각자 해안 격오지 소대급 부대에서 전입 신병들과 함께 신고를 시작으로 2박 3일간의 이등병 체험에 들어갔다. 이등병들과 거의 비슷한 23∼24세인 이들을 장교로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단장과 연대장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이번 임무를 몰랐기 때문. 기상 점호를 시작으로 ‘낯선’ 병영생활을 시작했다. 우려했던 ‘신고식’도 없었다.
병영 체험이 끝나고 자신과 함께했던 동료 이등병이 소대장임을 알고 기겁했다. 반말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동료가 장교였기 때문.
이번 병영 체험에 참석한 김민구(24) 소위는 “소대원들이 진짜 이등병인 줄 알고 아주 친절히 대해 주는 등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인간적인 면을 경험했다”며 “선임병이나 간부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언행이나 시설 부분에서 개선해야 할 점도 느끼는 등 아주 소중한 체험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임무는 간부 입장에서 병사들의 세계를 직접 체험, 자대 배치 후 소대원 지휘에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한편 31사단 신병교육대 대대장 조영필(43·육사44기) 중령도 부임 일주일 전인 지난 5월1∼4일 훈련병으로 변장, 훈련 전 과정을 체험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조중령은 대학원과 유학 때문에 군에 늦게 왔다는 말로 주변의 의심을 따돌리고 훈련병들과 함께 땀 흘리며 애로 사항을 청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31사단 관계자는 “훈련병 또는 같은 또래의 이등병 세계를 체험해 보는 것은 소홀하기 쉬운 의무 복무 병사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 전입 오는 신병교육대 간부는 반드시 이 과정을 거치도록 할 계획이고 이등병 체험도 횟수와 기간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제 다시 6년 후인 현재로 갑니다.
■2011년 7월 21일자 연합뉴스
"사단장 ‘실태파악’ 지시로 병사 내무생활 경험"
신임장교 6명이 이등병으로 위장해 병사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생활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21일 육군에 따르면 박종훈(25) 소위 등 신임장교 6명은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지난 15∼18일 양평에 있는 20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달 초 해병대 총기사건으로 내려진 김관진 국방장관의 부대진단 긴급지시 이후 내밀한 실태 파악을 원했던 사단장 나상웅 소장의 지시에 따른 조치였다.
지휘관이 직접 실상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니 병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신임장교를 투입해 알아보자는 의도였다.
이에 비교적 ‘동안(童顔)’인 6명의 장교가 선발, 투입됐고 이 사실은 사단장과 사단 사령부 인사참모 외에는 비밀에 부쳐졌다.
이들 6명은 나흘간 신병과 똑같은 보급품을 지급받고 전투복에 이름을 새긴 후 각 부대로 이동해 내무생활을 함께하며 병사들의 고충을 파악했다.
<신임장교 6명이 이등병으로 위장해 병사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생활한 ‘소대장 이등병 체험’을 마치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형·박종훈·김지수·이상혁·김민규·정필조 소위.>
박 소위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실제 신분은 장교이지만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나니 이등병처럼 긴장감과 두려움, 설렘을 느꼈다"면서 "이전에는 간부가 되는 방법 등에 관한 교육만 받았는데 신병체험 후 병사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군대가 서먹서먹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병사들은 세세한 것에 감동을 받는다"면서 "나보다 일주일 전 들어온 이등병이 먹을 것도 챙겨주면서 잘해줬는데 마지막까지 사실을 털어놓지 못해 미안했다"고 덧붙였다.
참가자들은 이러한 경험담을 모아 지난 20일 20사단 대대장 이상 지휘관 5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체험담을 발표했다.
이들이 전한 이야기 속에는 선임병이 흡연하면 후임병은 비흡연자일지라도 담배를 피우는 장소에 따라다녀야 하는 어려움, 선임병 앞에서 담배를 피울 때 왼손만 허용되는 등 생생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오른손은 언제든지 선임병을 보면 경례를 하라는 뜻에서 담배를 잡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 내무반에서 과자 파티를 마치고 나면 남은 과자는 이등병이 먹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육군 관계자는 이번에 파악한 실상을 토대로 지휘관과 병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확대하는 한편, 병영문화 혁신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소감 내용도 마찬가지
두 기사를 비교해 보면 6년전 위장체험했던 장교나 이번에 위장체험에 참가한 장교나 소감이 거의 유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군이 “이번에 파악한 실상을 토대로 지휘관과 병사를 대상으로 심도있는 교육을 하고 병영문화 혁신 노력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히는 것도 비슷합니다.
이번 비밀 체험은 ‘역지사지(易地思之)하겠다”는 야전 지휘관의 적극적인 병역문화 개선 노력으로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6년 전과 형식이 똑같고 소감도 비슷합니다.
반복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앞으로는 제발 비밀 병영 체험이 필요없는 군대가 됐으면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란 옛 말이 있습니다. 군은 지금까지 숱하게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쳤습니다. 이제는 외양간을 한번 고쳤으면 잘 유지·보수하길 바랍니다. 군 당국이 최근 내놓는 것들을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6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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