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저우 공군기지 공개한 중국군
김관진 국방장관이 7월 16일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200여㎞ 떨어진 창저우 공군 비행 시험 훈련기지(창저우 공군비행시험훈련연구원)를 방문, 중국군의 최신형 전투기 J-10의 시험 비행을 참관했다고 도하 각 언론이 보도했군요.(윗쪽 사진)
각 언론 매체마다 국방부 관계자가 “량광례 중국 국방부장이 지난 15일 한·중 국방장관 회담 후 만찬에서 ‘J-10 기지는 어느 나라에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다”며 “중국군이 이를 공개한 것은 한·중 군 당국간 교류 협력 확대 의지를 과시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였습니다.
6.25 참전한 경위3사단
김 장관은 J-10 기지를 찾기에 앞서 7월 15일 6·25 전쟁 때 참전했던 중국군 부대인 ‘경위3사단’을 방문해 각종 시범훈련을 참관했습니다.(윗쪽 사진)
베이징 교외에 위치한 ‘경위 3사단’의 전신은 6·25 전쟁 당시 강원도 홍천 오성산 전투를 비롯해 원산, 금강산 전투 등에 중공군 70사단 예하 부대로 참전한 바 있습니다. 1974년 이후부터 ‘경위 3사단’은 외국 VIP들에게 각종 시범을 보여주는 ‘외국 VIP 방문 단골 부대’라고 국방부는 기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감 장관은 부대 역사 브리핑을 들은 뒤 “과거엔 적이었는 데 지금은 친구가 되었군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베트남 국방장관이 한국을 찾는다면 우리는 베트남 전쟁 때 베트콩 섬멸에 앞장섰던 ‘맹호부대'를 참관하도록 할까요. 아마도 베트남측의 심기를 고려해 그렇게 하지 않을겁니다.
(우리 국방부는 과거 베트남 국방장관이 방한했을 때 국방부 청사 벽에 걸린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 제목과 설명도 쉽게 볼 수 없게끔 작업을 했습니다. 왜냐구요. 운보 작품의 제목이 적의 그림자라는 뜻의 ‘적영’입니다. 이 작품은 베트남전 당시 맹호부대가 월맹군을 상대로 전투하는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창저우 기지의 J-10>
한국군 3군단 붕괴시킨 179연대
중국군은 1999년 7월 27일 조성태 국방장관이 한국 국방장관으로는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6·25 전쟁에 참전했던 중국군 최정예 부대를 사열하고 참관하도록 했습니다.
조 장관이 방문한 이 부대는 육군 난징(南京)군구 산하 20군 179여단이었습니다. 1937년 창설된 이 부대는 6·25 당시 중공군 제3야전군 20군 60사단 179연대였습니다. 60사단은 중국의 군병력 감축계획에 따라 179여단으로 축소됐습니다.
179여단의 전신인 중공군 60사단은 1951년 5월 현리 전투에서 한국군 3군단을 붕괴시킨 부대입니다. 3군단은 그 충격으로 일시 해체됐다가 나중에 다시 만들어지게 됩니다.
당시에도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한국 국방장관이 6·25전쟁 당시 총부리를 겨놨던 중국군 부대를 방문해 사열을 한 것은 한·중간 군사분야 교류와 협력 수준이 급격히 진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중국군이 참관토록 한 부대들이 모두 6·25때 한국군을 난타하면서 위기에 빠뜨렸던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즉, 아픈 상처를 생각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중국측이 한국 국방부 방문단에게 “니들 까불지 마라. 6·25 때도 우리한테 많이 당했지. 앞으로도 까불면 다쳐”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꽈서 해석하는 것일까요.
계산된 미국 비난
앞서 천빙더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7월 15일 김 장관과의 면담에서 미국을 맹비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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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 부장은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문제를 집중 거론하면서 계속 한국의 최고 동맹국인 미국을 비난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중국군 수뇌부의 ‘의도적 결례’로 해석됩니다.
천빙더는 한국의 국방장관을 면전에 놓고 일부러 한국 기자들을 회담장에 들어오게 한 후 미국과 한국정부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한국 언론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한국 정부에도 경고를 보낸 것입니다.(사실 1999년 첫 한·중국방장관 회담 이후 중국측이 1~2명 정도의 취재기자는 허용하면서도 대규모 한국 기자단의 양국 국방장관회담 취재 방문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12년만에 한국 기자단의 방중을 허가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한국 언론을 이용하려는 꿍꿍이가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언론 플레이에 성공한 중국 군부, 뒤통수 맞은 한국 방문단
결과는 대 성공이었습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중국의 무례’를 제목으로 1면에 한국 국방장관 면전에서 일어난 중국의 미국 비난을 대서특필했습니다.
천빙더 총 참모장은 한·미 동맹을 겨냥해 남중국해 문제도 집중거론했습니다. 한국이 남중국해 분쟁에 있어 미국, 일본 편에 서서 괜한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사전 경고를 내린 셈이죠. 이는 또 한국과 미국, 일본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한·미·일 공조를 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도 거뒀습니다.(무례를 당하면서도 중국측의 협박을 무시할 수 없는 게 한국 정부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번 한·중국방장관회담을 통해 한국이 미국편에 설지, 중국 편에 설지를 선택하라는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실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국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보내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한국의 최우방인 미국이 주한미군기지 이전 등을 포함한 현안 이슈에서는 일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는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지 말라는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이냐"고 반문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미국과 아무리 친하다 한들 결국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미관계가 정립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파악하고 중국과 친하게 지내는 게 니들 한국에게 실리가 될 뿐더러 정신 건강에도 유익하다는 논리를 외교 관례를 무시한 채 작심하고 설파한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만 보면 무척 열받는 일입니다. 그러나 열받기에 앞서 중국의 전술에 휘말리지 않는 고단수의 대응이 필요합니다. 아직까지는 김관진 국방장관을 포함한 국방부의 중국 방문단이 어리버리한 상태에서 당한 것 같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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