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기사를 쓰면서 기사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가운데 기억에 독특하게 남아 있는 주인공이 한명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감안해 그의 이름을 ‘김한미’라고 부르자.
김한미는 탈영 ‘2관왕’이다. 재미교포인 그는 1998년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다. 그리고는 2003년 미 육군에 입대했다.
텍사스에 있는 미 육군 4사단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던 그는 계급이 상병때인 2005년 11월 국내에 있던 부친의 지병을 이유로 일시 귀국했다. 그러나 어찌어찌하다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아 미군 탈영병 신분이 됐다.
이후 국내에서 영어 강사생활 등을 하던 그는 귀국 약 1년 뒤인 2006년 11월 입영통지를 받고 한국군에 입대했다. 국내법상 해외 영주권 소유자라도 만 35세 이하 경우는 180일 이상 한국에 체류하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 육군 28사단에서 동생뻘 되는 동료들과 군생활을 하다 2007년 3월 8일 서울 용산의 미 8군을 찾았다가 주한미군 수사당국에 체포됐다. 그가 미 8군에 간 목적은 미 육군에서의 탈영문제를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이때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미군은 김한미를 군무이탈죄로 본토로 송환을 하려 했고, 이 사실을 알게된 한국군 수사당국이 김한미가 미국 영주권자지만 국적이 한국군인데다 신분이 한국군 현역 병사라는 점을 들어 신병 인수를 미군측에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미 군법은 탈영병의 경우 미 본토에서 일정기간 처벌을 받은 후 다시 복무를 하거나 전역조치를 하도록 돼 있어 김한미 문제는 양국간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결국 탈영한 미 육군 상병이자 한국군 이병인 김한미는 당시 28사단 헌병대장의 노력으로 신병이 한국군으로 이첩됐다.
이때부터 그의 독특한 행동이 시작됐다. 그는 한·미 두나라 군 복무를 모두 마칠 용의가 있다며 먼저 입대한 곳부터 복무를 마치고 나중에 한국군에서 복무하겠다고 나섰다. 게다가 빨리 미군에 복귀해 이라크전이 끝나기 전에 참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군이 그의 요구를 들어줄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는 미군에서 먼저 탈영 문제를 해결하고 오겠다며 전투복 착용을 거부, 부대측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틀동안 사복으로 지내다 설득끝에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그는 부대 복귀 3주 후쯤인 2007년 3월 30일 아침에 부대를 빠져 나간 후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리고는 그의 희안한 2개국 군대 탈영을 맨처음 보도했던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안녕하십니까 또다시 탈영을 한 김이병입니다’로 시작한 그의 이메일 편지는 자신의 입장을 당당하게(?) 밝힌 내용들이었다.
ps. 미군 탈영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이곳(한국군) 탈영은 육체적으로 힘들군요 ㅋ
미군과 한국군을 오가며 탈영했던 그는 첫번째 편지의 끝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두번째 이메일을 보낼 때는 ‘이해 안가시는 부분들은 언제든지 mail 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라고 친절한 안내도 곁들였다. 그때가 2007년 3월 31일이었다. 그리고나서 그는 바로 다음날 서울 홍익대 부근 찜질방에서 체포됐다.
그는 도피중에도 추적하는 군 수사관들에게 공중전화로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의 거취 문제를 협상하려 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 사건이 경향신문을 통해 알려지자 미 군사 전문지인 ‘성조’도 경향신문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 김한미의 처지를 놓고 미군 병사들이 온라인상에서 갑론을박을 벌였다.
웃기는 것은 보도를 본 ‘골 빈 X’들이 주한미군 당국에 전화를 걸어 “한국에는 미군 모병소가 어디 있나요” 또는 “미국 시민권을 받기 위해 미군에 입대하려는데 그 절차가 어떻게 됩니까”라고 문의하고 나선 일이었다.
아뭏든 김한미는 재판에서 실형을 받고 영등포 교도소로 보내졌다.
그러나 그의 독특한 행적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몇달 후 전화가 걸려왔다. 김한미였다.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매우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언제 나왔느냐, 쏘주 한잔 하자”고 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교도소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모범수 신분이여서 교도소 내에서 전화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후 몇차례 더 전화가 왔는데 한번은 자신이 가석방 대상인데 며칠 날 출소할 수 있는 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순간 뒷쪽에서 그의 발언을 제지하는 교도관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리고는 몇 달 전 반가운 이메일이 왔다. 나의 안부를 묻는 김한미의 이메일이었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얼굴 한번 보고 그때 못했던 소주 한잔 하자고.
그는 다시 이메일을 보내왔다. 지금 미국에서 미군 탈영 문제를 해결하고 있느라고 바쁘다고. 그는 미국에서 이메일을 보냈던 것이다.
아무쪼록 그가 미군 탈영 문제를 잘 해결했기를 바란다. 그리고 생각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그였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언제든지 여유가 있었다. 또 배짱도 느껴졌다. 아마도 그가 한국군이든 미군이든 특수임무를 맡았다면 무척 잘 해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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