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를 출입하면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이 다뤘던 기사가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그에 견주면 그 횟수는 적었지만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기사는 주로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국감장에서의 질책을 전달한다든지 아니면 러시아 항공기의 카디즈 침범을 다루는 식으로 보도를 꽤 했다.
취재를 하고 보도를 하면 할수록 느낀 점은 NLL과 카디즈는 협상을 통해 해결하지 않으면 ‘지뢰밭’이나 ‘시한폭탄’같은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이 두가지 사안은 최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NLL은 정국 경색의 뇌관이 되었고, 카디즈는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여기서 일반인들이 간과하는 점이 하나 있다. NLL이나 카디즈나 둘 다 우리 정부가 선포하거나 그린 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NLL과 카디즈는 모두 유엔군을 앞세운 미군이 일방적으로 그린 경계선들이다.
■북방한계선(NLL)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남·북한군의 무력충돌을 막기 위해 임으로 그었다. NLL은 서해 5개 도서와 북한 지역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강 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12개 좌표를 연결해 설정됐다. 그런만큼 서해상에는 정전협정에 따른 군사분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NLL이 국제법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근거가 돼 왔다.
당시, 클라크 사령관은 NLL 설정을 북한에 공식 통보하지 않았지만 한반도 바다가 유엔군과 국군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여서 북한은 NLL을 묵인했다. 실제로 1959년 북한에서 발행된 조선중앙연감에는 NLL이 군사분계선으로 표시돼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해군력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1973년부터 NLL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차 연평해전을 일으키고 일방적으로 해상분계선을 선포한데 이어 2002년 2차 연평해전, 2009년 대청교전,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 군사적 도발을 이어 왔다.
군은 남측이 NLL을 실효적으로 관할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법에 관계없이 NLL이 실질적 해상경계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1975년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은 “NLL은 일방적으로 국제수역을 분리한 것으로 국제법에 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방공식별구역(ADIZ)
일본에 이어 중국이 발표한 방공식별구역(ADIZ)에도 이어도가 포함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 정부만 60년 이상 이어도를 방공식별구역에서 빠트리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방공식별구역은 다른 나라 항공기 접근을 구별하도록 설정된 선이다.
우리 군이 운용하는 한국방공식별구역, 카디즈는 1951년 6·25전쟁때 설정됐다. 동쪽으로는 독도와 울릉도가,
남쪽으로는 제주도와 마라도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북한과 중국 항공기를 식별하려고 미군이 제주도 남방까지만 카디즈를 설정하는 바람에 이어도가 빠지게 됐다.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은 18년 뒤인 1969년 카디즈 주변에 설정됐지만, 이어도를 포함했다. 중국이 23일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에도 이어도가 포함됐다.
한국 정부는 1963년부터 미국과 일본에 카디즈에 이어도를 포함하도록 조정을 요구해왔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정작 카디즈 선을 그었던 미국은 한·일 양국간 해결할 문제라고 발을 뒤로 뺐다. 일본은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그 바람에 한국 정부는 이어도 해양기지에 헬기로 진입할 때마다 30분 전 일본에 통보를 해왔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법상 관할권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통보없이 외국의 항공기가 들어오면 전투기 출격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우리 공군도 러시아나 일본 전투기가 독도 인접 상공으로 접근할 때면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있다.
■무책임한 미국
위에서 언급했듯이 NLL이나 카디즈 모두 미군이 임의적이면서 편의적으로 그은 선들이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NLL과 카디즈는 한반도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러나 미국은 NLL로 야기된 남북간 충돌이나 불합리한 카디즈로 빚어진 한일 양국간 문제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NLL의 경우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포함해 남북간 충돌이 수차례 빚어졌건만 주한미군사령관은 동맹군인 한미연합사령관 자격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다만 마치 남북간 싸움의 심판인 것처럼 유엔군사령관의 자격으로 “한반도에서 긴장 사태가 악화되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반복해 왔다.
미국이 비협조로 일관해온 카디즈와 관련해서는 급기야 중국까지 방공식별구역 문제에 끼어 들면서 카디즈의 오랜 방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게 됐다.
<왼쪽 사진은 클라크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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