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가봐(甲午)야’ 확실히 안다고 했다. 주역 하는 분들에 따르면 혼돈기에는 갑오년이 돼야 안개가 걷히듯 향후 움직임이 보이는 데서 비롯된 말이 ‘가봐야 안다’라는 것이다.
그렇고 보면 ‘까봐야 안다’는 말도 ‘화투 패를 까봐야 한다’는 말에서 온 게 아니라 ‘가봐(甲午)야 안다’에서 원래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육·해·공군 대령 진급예정자 발표도 ‘역시 까봐야 안다’는 말이 통한 경우가 많았다.
그 어원이야 어떻든 세상 만사는 돌고 도는 것. 15일 공군 대령 진급자 발표에는 일반인에게도 낳익은 이름이 한명 있다. 이철수 대령 진급예정자. 1996년 5월 북한 공군 대위였던 그는 1996년 서해 덕적도 해상을 통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수원비행장에 안착했다.
당시 ‘물오리 작전’(귀순기 유도작전)이 약간 엉키면서 자칫 대공포에 맞을 뻔 했지만 아뭏든 무사히 공군 수원비행장 트랩을 내렸다. 그후 대한미국 공군으로 새출발했고 이번에 대령으로 진급하게 됐다.
‘인생만사 새옹지마’. 이 대령 진급자가 청운의 꿈을 품고 북한 공군 조종사가 됐을 때만 해도 스스로가 대한민국 공군 대령이 되리라고는 손톱 끝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새 뜨는 광고 카피인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로 뜬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도 IMF 이후 한때 절망의 밑바닥까지 갔다 왔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승승장구하는 사업 외에 받은 인세와 강연료만 수억원에 달한다.
그에게도 인생은 ‘가봐(甲午)야’ 확실히 아는 것이다.
국방부 출입을 오래 하다 보니 중령 또는 대령, 장군으로 진급하지 않은 게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는 오히려 잘된 경우도 꽤 많이 본다. 이 경우는 본인들의 프라이버시가 있어 구체적인 실명과 사례는 구체적으로 적기 힘드니 다른 실례를 스포츠계에서 하나 들어보겠다.
지난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1만m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 선수는 원래 쇼트트랙 선수였다. 그는 지난해 4월 올림픽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후 종목을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바꿨다.
사실 쇼트트랙이 국제스포츠의 겨울종목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 선수들 대부분은 체격의 열세로 스피드 스케이팅의 정상을 넘보기 힘들어 종목을 바꾼 이들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입장에서 보면 쇼트트랙 선수 상당수가 스피드스케이팅 ‘패잔병’들로 보일만 했다. 이런 까닭에 초창기에는 스피드 선수들이 쇼트트랙 선수들을 얕잡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승훈 선수의 예에서 보듯이 이제는 쇼트트랙에서 스피드로 종목을 바꿔 성공하는 시대가 됐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기자 세계도 마찬가지다. 기자 초년병 시절에만 해도 ‘제4부’라는 말이 있었다. 원래 어원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언론이 그 기능과 역할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3부(입법·사법·행정)와 견줄만한 위치에 있다 하여 붙인 말이었다.
이제 언론이 권력의 제4부라는 말은 그 어디서도 듣지 못하고 있다. 대신 미디어산업의 한 부분으로 통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제는 신문의 경우 사양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긴 과거 백수도 신문 한부만은 꼭 손에 쥐고 다방에 들어서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백수도 전철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는 판이니 신문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신문도 자꾸 신사업을 연구하고 돌파구를 찾고 있다.
주역의 대가인 대산 김석진 선생은 주역의 핵심이 ‘수시변역’(隨時變易·때에 따라서 변하고 바뀌어야 한다)과 ‘지시식변’(知時識變·때를 알고 변할 줄 알아야 한다)에 있다고 했다.
꼭 주역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말 시시각각 변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누가 인생의 마라톤 테이프를 먼저 끊을 지는 아무도 모를지언데 미래를 믿고 군 간부들도 진급 발표의 후유증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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