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의 전우애는 폭격의 화염보다 더 뜨거웠다!
- 빗발치는 포탄 뚫고 들것으로 부상병 의무대 까지 후송한 용감한 4인의 해병
- 부상 해병 피신시키고, 다시 폭격당한 건물로 들어가 2명의 해병 구해낸 간부
- 구급차와 통신두절 하, 포탄속으로 뛰어들어 직접 구급차 불러낸 간부
- 불붙은 포진지, 빗발치는 포화속에서 진화해 대응사격 여건 마련한 해병
- 전역교육대 입소대신 훈련 통제요원 참가 중 포격상황 발생, 후임대피 진두지휘
- 폭격 하 대피포기하고 다친 동료 부축하며 의무대에 안전하게 후송, 전우 목숨구해
- 폭격 속 구급차 못 오는 상황서 자신의 승용차로 불길 가로질러 부하 목숨 구한 간부들
- 전우와 함께 싸우겠다고 후송 거부하며 끝가지 고집 피웠던 해병
북한군의 포격으로 복구작업에 한창 진행 중인 요즘, 사태가 진정되면서 위험속에서도 전우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해병들의 사연이 전해지며 역시 전우애로 똘똘 뭉친 해병대라는 감동을 주고 있다
정비소대 조수원 일병은 1차 피폭당시 부상당해 구급차 후송을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상자가 많아 구급차의 승차인원이 제한되어 조일병은 자발적으로 나중에 탑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심각한 조일병의 부상을 목격한 동료 해병 4명(일병 조다형외 3명)이 곧바로 조일병을 들것에 싣고 포격을 피해가며 의무대로 후송, 조일병의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조일병은 당시 충격으로 조다형 일병만 생각나고 다른 3명이 기억나진 않지만 그들을 반드시 찾아 보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중화기 중대 김지용 상병은 다른 해병들과 함께 북한군의 포격간 마을 주민을 대피시키고 잠시 소강상태가 되자 부대로 복귀했다. 하지만 곧 2차 폭격이 시작되고 중대건물에 포격이 시작되며 파편으로 인해 목 파편상을 입었다.
하지만 중대 관측담당관인 김종선 상사가 김상병의 목을 지혈하고 “너는 내가 반드시 살린다. 걱정마라!”라고 외치며 건물 외부에 엄폐가 가능한 탄약고가 있으니 그리 피신하자며 김상병을 피신시켰다.
몸을 추스린 김상병은 이윽고 절친했던 심정우 상병과 강은규 일병을 찾았다 하지만 두 해병은 인기척이 없었다.
이에 이 사실을 김종선 상사에게 이야기 하자 김 상사는 포격이 쏟아지고 있는 건물로 다시 들어가서 피폭된 건물 속에 피신하고 있던 두 해병을 구해냈다.
이렇게 김종선 상사는 위험속에서 3명의 해병을 피폭된 건물속에서 구해냈다.
정비소대 이진규 일병도 차재원 하사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했다. 이진규 일병은 부대원들과 함께 포격을 피해 부대 거점으로 피신 중이었다.
하지만 거점을 10여미터 남기고 무자비한 적의 포격이 쏟아져 그 지점에 있던 모든 해병이 부상당했다.
이에 다행히 부상을 면한 차재원 하사가 핸드폰으로 구급차를 요청했으나 통신은 이미 두절된 상태였다.
하지만 차재원 하사는 “내가 가서 구급차 불러 올테니 너희는 여기서 반드시 살아 있어라”라고 말하며 화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후 포격이 멈추고 차재원 하사의 약속대로 구급차가 잠시 후 도착하여 위험했던 해병들은 목숨을 구했다.
또한 포7중대 상병 박진관은 최초 1포대 포상이 피격당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 포상 근처에 있던 기상반 건물에서 달려나와 소화기로 자주포 주변에 붙은 화염을 소화했다.
아직도 포상에는 포탄이 낙탄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박 상병은 오로지 자주포를 보존해 어서 북한군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에 박상병은 소화기로 모든 화염을 제압하고 난 후에야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여 K-9자주포의 즉각 대응사격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역을 앞두었던 두 명의 해병도 후임들의 대피를 도우며 자랑스럽게 25일 전역했다. 중화기중대 박인혁, 윤슬기 예비역 병장은 사건당일 전역교육대에 입소하여 전역준비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대훈련에 안전통제요원으로 나서겠다며 자발적으로 훈련에 참가했다.
그러던 중 북한군의 포격이 발생, 두 해병은 후임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자욱한 포연속에서 후임들에게 방향을 지시하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대피호로 해병들을 피신시켰다.
이후 25일 이들은 연평도를 출도하여 전역한 후 곧바로 수도통합 병원을 찾았다. 장렬히 산화한 전우를 조문하고 부상당한 후임들을 격려했다.
공병소대 오인표 하사도 동료 부사관 서아준 하사가 없었으면 목숨을 잃을뻔 했다. 서하사는 자신의 안위를 뒤로한 채 오인표 하사를 부축, 의무대로 후송하여 오하사의 생명을 구해냈다.
또한 김성환 일병도 당시 충격으로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동료 해병이 대피를 포기하고 자신에게 달려와 자신을 부축하고 의무대에 후송해 주었다며 그 전우를 반드시 찾고 싶다고 말했다.
중화기중대 김인철 일병도 간부들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졌다. 1차 폭격으로 김일병은 부상당해 당장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폭격으로 구급차가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에 최영진 상사와 신현욱 하사는 김일병을 부축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포화속을 가로질러 의무대까지 안전하게 후송시켜 부하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또한 경상자로 분류되었다가 중상자로 재분류되어 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된 공병소대 박봉현 일병은 끝까지 전우와 함께 싸우겠다고 군의관에게 고집을 피우며 연평도에 남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초반에 경상인줄 알았던 박일병의 다리는 심한 골절로 더 이상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박일병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동료들을 뒤로한 채 하루 뒤늦게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한편, 상근예비역으로 연평부대에 근무중인 정비소대 박기수 상병, 김영수 일병과 연평면대, 성기림 병장의 어머니들은 군복무중인 아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며 연평도에 남았다.
현재 연평도는 북한 포격의 피해로 폐허가 되다시피 해 모든 주민이 정든 고향을 멀리하고 육지로 떠난 상태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들들이 부대에 있는데 어찌 이곳을 떠나겠냐며 아직도 포연이 자욱한 연평도에 머무르며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해병대의 전우애는 그 어떤 조직 보다 강하고 끈끈하다. 이번 북한군의 폭격으로 비록 해병대는 두 명의 해병을 잃고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북한군의 포격도 해병대의 전우애보다 강하진 않았다.
오히려 해병들은 타오르는 화마속에서도 자신을 희생하며 동료와 주민들을 구하고 추가적인 피해를 막아냈다.
해병대의 전통으로 알려진 해병대의 끈끈한 전우애는 또다시 현실로 나타나며 무적해병의 전설을 오늘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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